티스토리 뷰

목차


    반응형
    2025년 하반기, 대한민국 금융행정의 중심축이 흔들리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대규모 금융당국 개편안이 발표를 목전에 두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한국은행(한은), 금융위원회(금융위), 금융감독원(금감원)의 조직 생존과 권한 강화를 위한 ‘각자도생’ 전략이 본격화되고 있다.

    이번 개편은 단순한 조직 재편이 아닌, 금융정책의 방향성과 감독구조, 정책조율 체계 전반을 재정립하는 중대한 변화를 내포한다. 특히 경계를 허물거나 신설하는 단계를 넘어 각 기관의 기능적 범위와 상대적 위계까지 조정될 가능성이 있어, 공공기관 내 최상위급 ‘권한 재분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 각각의 주요 플레이어가 어떤 전략을 펼치고 있으며, 이 개편안의 본질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1. 개편안의 구조: ‘금감위 부활’과 기재부 권한 확대

    현재까지 알려진 이재명 정부의 금융개편안 핵심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요약된다. 첫째, 금융정책 기능을 기획재정부로 이관하여 정책 설계의 총괄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 둘째, 과거 금감원을 대체했던 금융감독위원회(금감위)를 부활시키는 방안이다. 이는 IMF 외환위기 직후 추진되었던 감독기구 통합 이전 체제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은은 거시경제 안정 대응능력 강화를 위해 검사권 확대를 요구하며 사활을 걸고 있다. 한편, 금융위는 기능 분산 및 해체 위기에 봉착해 ‘존립’ 그 자체에 매달리는 실정이다. 금감원 또한 금소처 독립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국회를 상대로 활발한 설득전을 벌이고 있다.

    2. 한국은행의 움직임: ‘검사권’ 통한 독립적 감독기관 부상 시도

    한국은행 이창용 총재는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과 공동 주최한 콘퍼런스에서 "지금처럼 한은이 감독 권한이 없이 정책 조율만을 담당하는 구조는 금융위기나 비은행권 리스크에 대한 신속 대응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거시건전성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중앙은행이 검사·감독에 직·간접적인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발언하며 외환위기 이전 ‘은감원’ 역할을 부활시키자는 뜻을 내비쳤다.

    한은은 현재 금감원과의 ‘공동검사’는 가능하나 자율적인 검사권은 없다. 이로 인해 비은행 금융기관이나 그림자금융에 대한 즉각적인 감독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으며, 선진국 모델을 따라 금융 안정성을 제고될 수 있도록 감독 권한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실적인 논거로는 미국 연준이나 영국 중앙은행(BoE), 유럽중앙은행(ECB)을 제시한다. 이 기관들은 통화정책과 금융안정을 함께 추구하며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일부 책임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뉴질랜드, 네덜란드 중앙은행처럼 주요국 중앙은행이 자국 금융기관의 감독과 검사 권한을 행사하는 사례를 강조한다.

    3. 금융위원회의 딜레마: 기능 분산과 해체 기로에 선 실무 중심 기관

    금융위는 2008년 설립 이래, 금융정책의 설계부터 감독조율까지 전반을 총괄해 왔다. 그러나 개편안의 방향은 금융정책 기능을 기재부로 이관하여 ‘총괄자’로서의 역할을 없애겠다는 데 있어, 금융위 입장에서는 존재의 근간이 흔들리는 초유의 상황이다.

    특히 금융위 내부에서는 ‘정책과 감독의 분리’는 비효율적인 정책 추진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금융건전성 정책과 자산시장 규제를 하나의 틀로 조율해온 특성상, 기능이 분산되면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따로 두는 꼴’이 되어 내부 갈등만 키울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금융위는 여권 및 정부 인사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빠르게 대통령의 관련 발언에 대응해 정책을 발표하는 전략으로 ‘기민하고 유능한 조직’ 이미지를 각인시키려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주식시장 불공정 거래를 엄단하겠다고 발언하자, 즉시 과징금 상한을 2배로 끌어올리는 대처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4. 금융감독원의 선택: 금소처 분리 저지가 핵심 전선

    금감원은 조직 분화를 불러올 수 있는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의 분리 이슈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금소처가 독립기관 ‘금융소비자보호원’으로 전환될 경우, 현재 금감원이 수행하는 소비자보호 업무의 상당 부분이 이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금감원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을 직접 대상으로 설득전을 펼치고 있으며, 정책자료를 통해 “분해된 감독 기능은 충돌과 혼선을 야기하며, 법적 대응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신, 내부 기능만 강화하는 대안 모델을 제시하며 타협점을 모색 중이다.

    5. 제도 개편 이후 예상 시나리오와 리스크는?
    • 1) 정책 조율력 약화: 정책 기능이 여러 기관으로 쪼개지면, 위기대응 시 조율 속도 및 명확한 책임 소재가 저하될 수 있다. 예컨대 외환위기 시절처럼 정보비대칭과 명령 불일치가 발생할 가능성.
    • 2) 조직 간 파워게임 격화: 감독권, 검사권, 정책설계권이 서로 다른 기관에 분산될 경우, ‘법적 해석력’과 ‘정책 우선권’을 두고 진흙탕 싸움이 계속될 수 있다.
    • 3) 글로벌 신뢰도 영향: 한국 금융당국의 일관성과 전문성이 흔들린다는 인식이 생기면, 외국계 기관과 투자자들 사이에서도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6. 해외 사례가 주는 시사점

    미국은 연준(Fed), SEC, OCC, CFPB 등 기능별로 분산된 감독기구 구조를 유지하면서도,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금융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Dodd-Frank Act를 통해 지역 연방준비은행의 감독 능력을 강화했다. 영국 역시 1997년 Financial Services Authority(FSA)를 세운 뒤 이후 이를 해체하고 Prudential Regulation Authority(PRA)와 Financial Conduct Authority(FCA)로 분리했다.

    즉, 기능 중심 정비와 위기 대응력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감독구조의 명확성과 조율 메커니즘 확보가 핵심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단순히 기관의 숫자를 줄이거나 늘리는 것만으로는 달라질 수 없다.

    7. 결론: 금융개편, 정쟁 아닌 미래 대응 전략이어야

    이번 금융당국 개편은 단순한 권한싸움으로 볼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 디지털 자산, ESG금융 등 새로운 변수를 고려한 ‘미래지향적 금융 인프라’ 구축이 우선돼야 하며, 국정 방향과 일관성을 유지할 제도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앞으로 이 개편안이 정치적 합의 아래 공정하게 조율될 수 있느냐가 제2의 외환위기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적 방화벽’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각 기관이 단기적 자율성만을 확보하려는 것보다, 대한민국 금융 생태계의 거버넌스를 어떻게 설계하고 협력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반응형